일러두기.
이 글에서는 漢醫學은 중국의학으로, 韓醫學은 한의학으로 표기합니다.
이 글을 보고 스스로 더 알아보고 싶은 분은 다음 서적을 추천해 드립니다.
-동아시아 의학의 전통과 근대. 이종찬
-중국의학은 어떻게 시작되었는가. 야마다 게이지
-상한 이론의 발전사에 관한 연구(동국대박사학위논문). 정성채
전국시대와 한나라시대를 거쳐 황제내경과 상한잡병론이 형성됩니다. 이 두 텍스트야 말로 중의학의 근간을 이루는 양대 산맥이지요.
황제내경을 접하는 관점은 크게 세 가지로 요약됩니다. 첫 번째는 이제까지 존재해온 모든 이론과 개념 치료방법 등을 음양오행의 개념으로 접근하는 관점이고, 두 번째는 모든 의학적인 내용을 황제내경에 있는 내용으로 바꾸어 접근하는 관점입니다. 세번째는 '최초'와 '골자'정도의 의미를 부여하는 관점입니다. 이 세가지에서 무얼 선택하냐에 따라 한의사의 인생은 달라지지요^^. 이 부분에 대해서는 다음 포스팅에서 언급하겠습니다.
일반적으로 황제내경은 鍼灸를 중심으로 서술되어 있어 ‘중국 고유의 의학’으로 취급되고 있는 실정입니다. 그러나 灸에 관해서는 동일 시대 즉, 고대 그리스 로마 이집트 등에서도 있던 치료술이었고, 鍼의 개발과 발달에 대해서는 이견이 많지만 마왕퇴에서 출토된 ‘족비십일맥구경’ 등의 의서나 장가산 한묘에서 출토된 ‘맥서’ 등에 鍼에 대한 언급이 없는 것으로 보아 전국시대에 발명 또는 전해졌다고 보는 것이 정설입니다. 어쨌든 황제내경이 기본적으로 함유하고 있는 의학은 鍼灸를 기반으로 한다는 점을 주목해야 합니다. 그러면 황제내경에 수록된 여러 편들은 한족 고유의 것이 아니라 인도의 의학이나 티벳 고산족의 의학, 북쪽의 기마민족에 의해 전해진 경험 들이 하나의 기술로 전해지다가 도가를 기반 사상으로 하는 한나라시대의 음양오행설이 맞물려 하나의 체계를 이루었다고 충분히 추론할 수 있지요.(자세한 사항은 위 추천서적 참고)
상한잡병론은 그 발생 연원이 조금 다른 양상을 띱니다. 중국의 사천성 근처와 양양 이남(당시 이쪽에 살던 민족은 한족의 입장에서 보면 모두 이민족)에서 존재한 경험들이 伊尹의 ‘湯液經’과 합쳐져 장중경에 의해 증상의 변화를 관찰하여 그에 따른 처방을 내리는 형식으로 정리가 됩니다. 여기에 왕숙화가 주석을 붙이고 조문의 순서를 정리한 것이 내려와 현재의 상한론의 틀을 형성하고 있는 것이죠. 그런데 70년대에 일본에서 강평본이 발견되면서 상한론에 대한 논쟁이 벌어지게 됩니다. 현재 중국에서 나오는 상한론에 대한 책들을 보면 이 강평본에 대해 애써 무시하려는 경향이 강하지요 ㅎㅎ. 조문들을 비교해보면 道家적인 서술을 강평본에서는 거의 발견하기 힘듭니다. 즉, 상한론을 읽다가 좀 땡뚱맞은 해석이 등장한다 싶으면 어김없이 강평본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는 점에서 상한잡병론과 황제내경을 한 데 묶어 설명하려는 시도를 무참히 짓밟는 결과가 초래되니까요. 두 텍스트를 서로 연결시켜 설명했던 역대 유명 의가들이 여럿 X되었죠^^. 개인적으로는 청나라시대의 의가들이 이 판본을 봤으면 어땠을까라고 상상하고는 피식 웃는답니다.
또한, 강평본을 기존에 내려오던 여러 판본과 비교한 것에 의하면 상한잡병론은 그 당시 남쪽의 이민족(한족의 입장에서)의 경험이 집대성된 텍스트가 되는 것이므로 중국에서 자생한 의학이란 설을 반증하는 한 증거가 되어 현재 한족 중심으로 국가가 이루어진 중국에서 대놓고 정본으로 인정하기에 껄끄러운 책이 되었답니다. ㅋㅋ . (이는 쓰인 본초를 살펴보면 알 수 있습니다. 상한론에 등장하는 약재는 거의 중국의 서남쪽에 존재하는 것.)
여기까지 두 텍스트에 관해 언급했는데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중국의학은 어느 순간 짠~하고 나타난 것이 아니라 주위의 여러 국가나 민족으로부터 전해 받은 기술을 당시의 지배적인 사상이 결합되어 형성된 것이다’
누가 ‘중국의학은 중국에서 자생한 의학이 아니냐?’라고 물어보면 귀차니즘에 이렇게 길게 대답 안하고 단순하게 예를 들어 설명합니다. ‘넌 네가 확실하게 기억하고 있는 사실을 기록하냐? 누구한테 전해 들었거나 모르는 것일 때 기록하지 않느냐?’라고요.
그럼 다시 돌아가 이 두 가지의 텍스트가 변해 가는 과정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한나라시대이후 각각 鍼灸와 方藥의 흐름이 형성되어 나름대로 발전하게 됩니다. 중간에 이를 합쳐 설명하려는 여러 노력이 있었지만 그다지 빛을 못 보게 되죠. 그러다가 이 두 줄기는 여러 번의 戰禍를 거치고 수당시대에 이르러 손사막에 의해 ‘비급천금요방’이라는 책으로 집대성됩니다. 두 텍스트의 이론이 합쳐지기 전에 의학 기술이 먼저 집대성되어 나오게 된 것이지요. 수많은 의사들이 하나의 이론으로 두 텍스트를 결합하려 했지만 시도에서 그치고 임상서가 먼저 출간된 것은 중국의학이 경험의학이라는 사실을 반영하므로 주목해야 하는 점이기도 합니다(이는 라스핀이 ‘이거 하나만 하면 돼’라는 식의 무대포식 이론가들을 곱지않은 시선으로 보는 한가지 이유가 된답니다).
‘비급천금요방’과 당나라시대의 ‘외대비요’, 송나라시대의 ‘태평혜민화제국방’ 등등의 方書들이 등장한 후, 금원시대에 네 사람의 걸출한 의가에 의해 각각의 통합 이론(?)이 나올 수 있었던 셈입니다.
이 금원사대가라 불리는 네 명의 의사는 황제내경을 기반으로 각자의 이론을 정립하고 그 方藥은 상한잡병론을 기반으로 하여 나름대로의 입법방약을 구사하게 됩니다. 중국의학은 이 유완소 주진형 이동원 장자화에 의해 그 동안의 임상경험과 이론이 하나의 몸뚱이를 가지게 되어 비로소 ‘學’이라는 이름을 달수 있었지만 그에 못지않은 병폐를 형성하게 됩니다. 그 전에는 볼 수 없었던 ‘줄서기’가 의학계에 성행함과 동시에, 한족 중심의 의학이 성립하게 되었다는 병폐지요. 명청시대에 이르러서는 그 양상이 심해져 말 그대로 ‘가관’이 됩니다. 저마다 뛰어난 의사들이 일가를 이루어 한 지역의 패권(?)을 장악하는 일이 다반사로 진행이 되지요.
명나라시대에는 상한론에 대해 왕숙화의 잘못을 지적하면서 일가를 이루는 쪽도 있고, 그와는 반대로 왕숙화를 황제와 장중경 이후 醫聖으로 받들어 모시는 쪽도 있고, 또는 상한론에 미비했던 점을 보충하여야 한다는 쪽도 있고, 내경 중심의 의학을 주창하는 쪽도 있는 등 저마다 깃발을 하나씩 세워 醫家를 이룹니다. 이즈음에 유학자 이천선생이 비교적 중도적인 입장으로 서술한 책이 ‘의학입문’이 되는 것이죠. ‘의학입문’에는 내경부터 시작하여 금원사대가의 이론, 온병의 기초(병기십구조), 내경의 관점이 섞인 상한, 이동원의 내상에 관한 이론, 다섯가지 치법 등등 당시에 존재하던 여러 의가의 이론들이 골고루 섞인 형태를 취하고 있는데 나름대로 줄기를 가지고 있게 됩니다.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좋게 말하면 의가 중심의 의학, 나쁘게 말하면 줄서기 의학이 깊게 뿌리박혀버린 중국에서는 정작 대우를 못 받는 비운의 저작이 되어버렸죠 ㅡ,.ㅡ .
또한 청나라시대에 이르러서 상한과 내경을 한 데 묶어 정리해버린 오국통 선생의 ‘온병조변’이 등장하나, 이 책 역시 줄서기 의학이 골수까지 젖어든 중국의학의 풍토 때문에 빛을 보지 못하다가 1920년대에 이르러 醫經으로 인정받게 됩니다. 이러한 이유로 같은 처방을 두고 그 해석이 각 의가마다 다른 상황이 발생하기도 하고, 같은 상황을 두고 처방이 판이하게 다른 경우도 발생하게 됩니다. 그래서 명청시대의 저작을 읽을 때는 이러한 배경을 잘 이해하고 있어야 합니다. 무작정 손을 대었다가는 곤란한 상황이 발생하니까요.
그러나 1966부터 10여년에 걸친 문화혁명으로 인해 소위 전통의학이라 불리는 것들이 배척(원래는 중서의결합을 주창하였지만 결과적으로)당하고 서양의학의 병리진단에 처방만을 이어붙인 기형적인 형태의 ‘중의학’이 등장하게 되지요. 어느 정도 성과도 있었지만 기대에 못 미치자 1980년대에 문헌 정리부터 시작하여 새로이 접근하기 시작합니다. 또한 전통적인 해석에 의한 임상과 병행하여, 그로 인해 얻어진 데이터를 실험위주의 서양 과학의 잣대로 현대적인 모습을 갖추어 나가고 있지요. 하루에도 몇 천편씩 올라오는 논문의 양을 보면 기가 찰 정도입니다. 요 몇 년전까지만 해도 그닥 쓸만한게 없었지만 슬슬 국제 유수 저널에도 하나둘씩 등장하는 것을 보면 얼마 지나지 않아 새로운 형태의 의학이 형성되리라 봅니다.
아무튼 청나라시대까지의 중국의학을 요약하면 ‘醫家 중심의 의학’이라 말할 수 있으며 이는 한의학과 가장 다른 점이라 하겠습니다.
+궁금하신 분(별로 없겠지만...)은 전에 포스팅한 “라스핀‘s 說之三 ::: 왜 한의사들마다 체질을 감별하는 것이 다르죠?”의 뒷부분에 한의학에 대한 발전사가 어지럽게 서술되어 있으니 참고하여 이번 포스팅과 비교하면서 ’다른 점‘을 찾아보시면 좋을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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