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일한 조건에서 동일한 결과가 나오지 않는다면 과학이 아니라고 어떤 과학자가 말했다고 하더군요. 즉, 사상의학이든 어떠한 획기적인 의학원리이든간에, 한 환자를 놓고 열 의사가 같은 체질로 분류할 수 있는 이론이래야 정확한 이론이 아닐까요? 선생님의 고견을 듣고 싶습니다. (나나님이 궁금해하시는 부분이라고 합니다. 메일로 설날연휴에 짧게나마 정리해서 올리겠다고 약속드린만큼, 정리가 덜된 상태에서 올립니다. 양해부탁드립니다.)
한의대생이나 한의사가 어느 모임에 참석하던,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이 침(針)과 체질(體質)에 관한 것이 아닐까 합니다. 이번 포스팅은 나나님이 우석한의 게시판에 질문에 대한 답글 겸 라스핀이 생각하는 체질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이 글에서는 태양인 소양인 태음인 소음인으로 나누어 각각의 특징이나 구별법을 언급하지는 않겠습니다. 단지, 얼마전 공중파 방송에서도 한 차례 나왔던 문제, ‘왜 한의사들마다 체질을 감별하는 것이 틀리죠?’라는 의문에 대해 짚고 넘어가지요.
첫 번째로 동의수세보원이 그 가치에 비해 한의학의 변두리에서 중심지까지 오는 시간이 너무 많이 걸렸다는 점입니다. 사상의학이 한의사국가고시 시험과목으로 채택된지 이제 5년입니다. 국가고시과목이라는 것은 한의사가 알아야할 필수 내용이므로 이를 검증한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으므로 이 부분에 주목할 필요성이 있습니다. 채택되기 전에는 (제가 알고 있는 바로는) 11개 한의과대학 중에서 사상의학을 전공필수가 아닌 전공선택, 심지어는 교과과정에서 빠져있었던 학교도 있었다 합니다. 이런 상태에서 표준화된 체질감별법이 개발되기도 전에 드라마의 영향으로 일반인들에게 널리 알려지면서 저마다의 기준이 난립하게 된 것이지요. 2007년 현재는 그 체질진단의 표준화가 연구 및 개발되고 있는 상태랍니다. 지금은 개발단계에 있지만 요구하는 수준의 객관성이 확보되면 멀지않아 보수교육 또는 공고를 통해 한의사들이 표준적인 기준으로 진단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두 번째로 국가적인 지원의 미비함입니다. 몇 달전에야 국립대학에 한의학전문대학원이 설립된다고 발표가 났습니다. 현재 11개 한의과대학은 모두 사립대학에 설치되어 있지요. 사립대학은 그 특성상 연구개발보다는 한방병원이 내는 수익성에 그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연구개발에 들어가는 비용은 1-2년 들어간다고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기에 학문의 발전보다는 당장의 수익에 목을 매는 것이죠. 대부분의 한의과대학에서 진행되는 연구개발은 학문 발전이 초석이 되는 기초분야(원전 경혈 본초)보다는 일단 ‘돈’이 되는 한방화장품 건강식품 특정질병치료처방 등에 국한되어있습니다. 한의학연구원에서는 대한민국의 전통의학서적을 정리하고 국내에 유통되고 있는 약재의 진위감별에도 벅찰 것이기에, 국가의 지원을 받아 꾸준히 기초연구를 행할 수 있는 곳이 절실히 필요한 상태입니다. 그래서 한의계에서는 그나마 국내에서 연구환경이 지속적으로 제공될 수 있는 국립대학내 한의대 설치를 지난 10여년간 요구하였고 그 결실이 2008년에야 나타나게되었답니다. 재작년에는 이 열악한 사립대학교의 사정 속에서 어떻게든 비용을 변통하여 기초연구를 해오시던 일부 교수님이 피해를 입는 사건도 있었으니 시급한 문제입니다. 중국과 일본, 인도만 보더라도 자신들의 전통의학을 유니세프 세계문화유산에 등록하려고 엄청난 자본을 뿌려대고 있는 형편인데, 우리나라에서는 이에 대비한다는 것이 겨우 한의학연구원에서 데이터베이스화를 진행하고 있는 정도입니다. 상황이 이러한데 한의학의 한 분야로 취급되고 있는 사상의학에는 얼마나 관심을 쏟고 있겠습니까? 국가의 지원없이 사립대학의 부속한방병원에서 나오는 데이터를 기초로하여 표준화 작업을 하고 있으니 굼벵이는 저리가라겠지요. 이 ‘국가의 지원 미비’라는 점은 말만 해도 속터지니 이 즈음에서 그만두고 다른 것을.....
세 번째로는 동의수세보원을 보는 시각차입니다(효과의 우수성으로 인해 지금은 그래도 많이 없어진 편인데 한의계내에서 ‘사상의학’을 정식으로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동의수세보원을 하나의 동떨어진 의학체계로 보는 관점"과 "의학 발달 과정의 필연적인 산물"으로 보는 관점이 바로 그것입니다. 라스핀은 후자의 관점을 가지고 있지요. 어쨌든 이 부분이 감별진단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전자의 관점으로 처방전을 내려면 반드시 체질감별이 선행되어야 하며 그 결과 효과도 확실하고 부작용도 확실--;하게 되는 것이죠. 따로 동떨어진 의학이라고 생각하기에 동의수세보원의 틀 안에서 해결을 시도하므로 가부(可否)가 확실해지는 장점이 있습니다. 그러나 후자의 관점을 가지고 처방전을 내려면 기존의 처방(후세방)을 가지고 일단 급한 증상을 소실시켜놓고 그 소실되는 과정을 살펴 체질을 감별하게 되는데 체질감별에 있어서는 오진할 확률이 약간 줄어들지만 치료과정은 길어진다는 단점이 생기게 됩니다. (그런데 이 후자의 방법을 전혀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도 많답니다^^) 아직까지는 이 두가지 관점사이에서 충돌이 많은 편입니다. 학자 중에서는 다른 관점을 가진 사람의 저작이 언급되는 것도 싫어하는 경우도 더러 있을 정도랍니다. 그러나 이런 견해의 차이로 인해 동의수세보원에 대한 연구가 심도있게 진행된다면 좋은 일이겠죠. zZ.
네 번째는 약재의 해석에 대한 문제입니다. 기존의 한의학에서는 기미(氣味)를 중점으로 약성(藥性)을 파악합니다. 문제는 여기서 발생하지요. 동의수세보원은 용어부터가 기존의 한의학과는 다릅니다(이 부분에 대해 라스핀은 동의수세보원에 어떤 한의학 저서보다도 큰 점수를 주고 있습니다. 전혀 새로운 관점으로 ‘철저한 관찰’을 바탕으로 재정립했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약성(藥性) 또한 전혀 다른 용어를 사용하여 설명합니다. 앞서 포스팅한, 소양인형방지황탕과 청대말의 강독패독산을 비교분석은 이러한 부분을 조금이나마 해결하고자 하는 노력인 셈이나 약재에 대한 철저한 연구가 선행된다면 좀더 쉬이 접근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런 연유로 약재에 대한 본질적인 연구가 필요한데 현 시점에서는 갈 길이 요원한 상태랍니다. 라스핀이 본초학교실에 몸담기로 결정한 이유가 제가 세웠던 가설을 보편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약성(藥性)을 연구하는 것이었답니다. 그런데... 아뿔사... 아주 아주 기초적인 진품(眞品)에 대한 분석조차 완전히 끝난 상태가 아니라는 상황에 방향을 크게 선회해야만 했지요.(‘너네들이 지금 열심히 해놓으면, 너희 후배들부터는 가능할 것이다’라는 교수님말씀에 우왕좌왕했던 기억이 ㅠㅜ). 이는 국가 학교 학자 학생 모두 게으름의 삼위일체로 빚어진 결과니 앞으로 열심히 해야 한다라는 정도로 정리를 하겠습니다. (__)
다섯번째는 현실 임상가의 구조적인 문제입니다. 동의수세보원을 저술하신 이제마선생이 한 사람의 체질을 감별하기위해 반나절 또는 하루 이상의 시간을 환자와 같이 보냈다는 일화가 몇 개있습니다. 이 일화는 그만큼 체질 진단이 어렵고 시간이 많이 소요된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겠죠. 그런데 현재 대부분 한의원은 이런 '시간을 들이는' 진단을 행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해있습니다. 그 이유는 한의사에게는 순수하게 진료에 대한 수당이 지급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침구를 시술하거나 약을 지어야만 수익을 기대할 수 있는 구조적인 문제점이 존재하고 있는것이죠. 그래서 '첩약의료보험'을 시행해 달라는 요구를 끊임없이 하고 있지만, FTA가 체결되면 이러한 요구는 물 건너간 상황이 되겠지요. 이러한 구조적인 문제를 타결할 수 있는 방법은 현재로서는 딱 한가지 뿐입니다. 동의수세보원은 체질감별이 틀렸을때 해결할 수 있는 길을 암시하고 있으므로, 환자 스스로 믿음을 줄 수 있는 한명의 한의사에게 꾸준히 진단치료를 받는 것이 그 길입니다. 동의수세보원에 있는 처방만큼 부작용이 뚜렷하게 나타나는 처방은 현존하는 전통의학(중국 한국 일본 등등)에서 거의 찾아보기 힘들기 때문에 아주 용렬한 의사가 아니라면 쉬이 다른 길을 찾을 수 있답니다. 임상가에서 사상의학에 아주 조예가 깊으신 유모 선생님은 체질감별이 정말 곤란하면 아예 환자에게 양해를 구하고 약 한두첩을 주어 그 반응을 살펴 감별하신다고 하고 이 분의 책에서도 그 방법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이외에도 한의사 개인의 능력차, 유통되는 한약재의 문제, 검증되지 않은 유사의료에서 파생한 진단방법 등의 요인을 들 수 있겠으나, 앞의 다섯가지가 주요원인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동의수세보원에 기반한 사상의학은 일반인들의 관심도는 저 높이 있는데반해 사상의학을 둘러싼 제반 사항 및 학문에 대한 연구, 인식 등은 뒤쳐지고 있는 형편이라 체질 진단에 어려움이 많은 것이라고 정리할 수 있겠습니다.
네... 갈 길이 아직도 멀고도 멀지요. 그래도 어쩌겠습니까. 차근차근 하나씩 해결하는 수밖에.....
+ 앞서의 '처방'이라는 단어에서, 이 글에서만큼은 "변증론치"를 전부 의미한다고 생각해주세요. '변증론치'는 전문용어라 그나마 쉬이 알 수 있는 용어를 선택하다보니 그렇게 되었습니다 (__)
+ 세번째 관점차에 대한 이야기는 정말 복잡다단한 문제입니다. 이 부분은 상한잡병론, 금원사대가 저작, 황제내경, 난경, 의학입문, 온병집성, 동의보감, 동의수세보원을 겉핧기나마 접하신 분들(언급한 책을 대부분 배우는 한의대과정을 밟으신분 포함)이 읽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렇지 않은 분들이 하시는 비판은 가뿐히 무시 비스무리하게.... 쿨럭...... (몇년전에 어느 유명하신 분이 사석에서 동의보감에 대한 혹독한 비판을 하시기에 한 번 읽어 보셨냐고 여쭈었더니...글쎄 목차만 대충 봤다라고 하시더군요. 순간 허탈해했었습니다. 참고로 현재 그 분은 동의보감 추종자가 되어있으십니다만...흠)
이 글에서는 세번째 관첨차에 대한 라스핀의 관점을 총괄적으로 언급하고 다음기회에 부분부분 예시를 들어가며 포스팅하도록 하겠습니다. 사상의학은 완전한 다른 체계라고 믿는 분이 이 글을 본다면 초짜가 알지도 못하면서 별 잡스러운 소리를 한다고 화를 내실지도.... (__)
중국의 전통의학 발전사를 보면 크게 2가지 흐름으로 요약됩니다. 황제내경을 기초로 음양오행설에 그 기초를 두고 발달한 흐름과 상한잡병론에 기초를 두고 발달한 흐름이지요. 이 2가지 흐름은 청대 중기에 이르러서야 오국통선생에 의해 집대성됩니다. 그래서 중국 전통의학의 의경(醫經)이라고 하면 황제내경, 상한잡병론, 난경, 온병집성(온병집성은 근대에 들어서야 인정받음)을 말한다 하지요.
그러나 우리나라의 의학발달사는 약간 다른 형태를 띄게 됩니다. 조선 초기까지만 해도 본초서나 처방서가 주류를 이루다가 종합의서인 동의보감이 저술된 이후로 눈에 띄게 다른 길을 걷게 되는 것이죠. 이는 동의보감의 편제를 살펴보면 잘 알 수 있습니다. 질병에 대한 인식이 넓어진 것은 차지하고서라도(온병집성과 비교해 보면 각 병인에 대한 기술이 상세합니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질병의 정의가 변화된 것을 서술(저술 당시에 다른게 있다면 그 끝에 정의를 내림)하고 분류를 한 후 타 유사 질병과의 감별점과 예후를 언급한 뒤에 각 변증 방법(대개는 팔강변증과 오장육부변증)에 따라 처방을 기록한 점은 의학사의 대변혁이었다 말할 수 있습니다. 이 서술 체계는 현대 의학과 별반 다를게 없는 것이기도 하며 서양의학과 비교해 볼때 시대적으로 훠~~~월신 앞선 것이기도 합니다.
이 동의보감으로 인해 우리의 전통의학은 ' 의가(醫家)의 이론에 따라 체계가 좌지우지되는 청대말기까지의 중국의학'과는 다른 길을 걷게됩니다. 실증적인 관점을 확보하게된 이후로 독자적인 길을 걷다가, 조선말기에 이르러 황제내경과 난경과 아주 결별선언을 하게 되는 저작이 바로 동의수세보원입니다. 성명론부터 의원론까지를 살펴보면 용어가 정말 색다름(?)을 알 수 있는데(현재에서야 어려운 용어일뿐이지 저술 당시에는 일상적으로 쓰인 용어^^ 좀 오래된 우리말 사전을 이용해 보세요~) 이는 오해의 소지가 있는 기존의 용어를 버리고 새로운 용어로 인간의 생리와 병리를 해석하려고 한 노력이지요. (동의수세보원을 읽을때마다 생각나는 것... 그건 바로 끔찍할 정도로 집요하다는 점입니다 ㅠㅜ) 동의수세보원의 편제는 일반인들 생각과는 다른 형태입니다. 책의 앞부분에서는 새로운 의학체계에 대한 기초가 실려있고 그 다음이 의학 발달의 필연적인 결과이며 모자란 부분의 보충이라 보여주는 의원론이 있으며 그 다음이 각 체질별 병리가 기술되어 있고 마지막 즈음에서야 사상인 체질 변증론(체질을 감별할때의 일반적인 사항)이 등장합니다. 즉, 책의 편제에 따르면 이렇게 되겠죠. 일단 환자의 일반적인 상황을 파악하고 그 다음에 병증을 파악한 후 최후에 체질을 확실하게 감별하여 치료에 임한다는 순으로요.(누차 말씀드린대로 라스핀의 가설입니다.)
제가 주목한 부분은 바로 기존의학에 미비한 점인 "나머지를 채웠다"라는 부분입니다. 이를 고려하면 이제마선생이전의 관점으로도 동의수세보원에 수록된 병증을 바라보는게 가능하다라는 가설이 성립하게 되는 것이죠. 그래서 앞서 포스팅한대로 변증의 통합을 제가 꿈꾸는 것이기도 하구요.
그러므로 사상의학의 테두리 안에서 맴도는 것은 아니랍니다. 당근 '나머지를 채웠다'라는 것이므로 그 외의 사항에 대해서는 스스로 알아 낼 수 밖에 없는 치명적인 단점이 존재합니다. 결국 라스핀이 지향하는 바는 "상한잡병론부터 의학입문 동의보감의 수순을 밟은 뒤, 온병집성 또는 청대말기의 중국의학과 비교분석을 통하여 동의수세보원의 끝부분에 기술된 사상인 변증론(단순화해서 말하면 일반화된 체질감별)에 의지하지 않고서 병을 파악할 수 있어야 된다"는 얘기입니다(한 10년쯤 걸릴것으로... (__)).
아주 아주 도식화 단순화 해서 말하면 이 가설이 '임상적'으로 실용화된다면 ‘왜 한의사들마다 체질을 감별하는 것이 틀리죠?’란 말을 들을 필요가 없이 즉, 체질감별 없이 동의수세보원에서 기술하는 변증용약을 사용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이것이 완전하게 '실험적'으로 검증되려면 본초에 대한 근본적인 연구가 선행되어야 하지요. 통합하려면 약성을 기존의 이론으로 입증할 수 없을테니 말이지요. 현재는 일단 이에 대한 '단서'를 아주 쬐끔 잡은 형편입니다. 지도교수님의 말씀처럼 열심히 하면 언젠가는 가능하리라고 보면서 연구직에 있을랍니다. 차라리 아예 몰랐으면 임상가에 나갔을텐데... 그넘의 궁금증땜시... ㅡㅡa <- 나이 먹을만큼 먹은 넘이 돈벌어서 장가갈 생각은 안하고 학교에 남는다는걸 이해 못해주시는 분들이 있어 이번 포스팅에서 사알짝~~끼워 넣습니다. ㅋㅋ
아무튼 그렇습니다. 저의 말재주가 탐탁치 않은 관계로 이 정도뿐이 표현을 못하는게 한스러울뿐입니다.ㅠㅜ
+ 뒷 부분은 따로 떼내서 보충한 후 새로운 제목 "라스핀‘s 說之四 ::: 중의학과 한의학은 뭐가 다르지?"로 포스팅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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