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이맘때쯤의 기억이 채 사라지기도 전에, 학교에 또 하나의 자그마한 투쟁이 시작되었습니다.

사건의 발단은 학교측에서 대책 없이 뽑아 놓은 신설과를 위해 사용빈도가 떨어지는(순전히 학교입장입니다) 졸업준비위원회실, 추나실습실(추나실습실이 없는 관계로 대학원강의실을 용도변경했습니다), 기공실습실(무의도라는 동아리방이기도 합니다) 이 3개의 공간을 이공대로 넘기라는 학교측의 공문입니다.

2004년 이후 참기도 많이 참았습니다. 다른 10개 대학들은 하나씩 하나씩 실습병원을 늘리고 있는 와중에 오히려 병원의 재활과를 없애버렸을때도 어렵다는 학교 사정을 고려하여 참기도 많이 참았습니다. 그래도 이사장이 서명한 수도권분원설치안을 생각하며 학교 사정이 나아지면 실습환경이 좀 나아지겠지라는 생각에, 또는 어쩔 수 없다는 패배감에 모른채하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참거나 모른채 하였더니 이젠 방빼라고까지 합니다. 아무리 사용빈도가 낮더라도 현재 실습이 이루어지는공간인 2개의 실습실과 국가고시를 준비하는 졸준위실까지 빼라고 하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국가고시장에 갈 버스를 대여할테니 지원을 해달라고 하면 안된다고 한 건 그렇다치지만, 이젠 학생들이 모여 졸업전에 행사를 준비하고 국가고시를 준비하는 공간을 달라고 합니다.

병원에 임상실습을 위해 강의동을 요구했더니 비새는 어두컴컴하고 퀘퀘한 지하실의 한 구석으로 들어가라고 합니다. 그러면서도 '고등학생 학교탐방'이라는 명목으로 회당 2천만원(1년에 10회 정도?)의 비용을 해마다 쓰고 있고, 서울의 지하철안 광고, TV광고, 잡지광고, 고속도로대형간판광고 등으로 일단 끌어오자는 식의 예산집행을 몇년째 서슴치 않고 행하고 있습니다.

수도권에 병원을 지어달라고 아니고 임대병원이라도 좋으니 수도권으로 가자는 말도 그냥 씹고만 있습니다. 순전히 규모로만 따져도 2-3년 후에는 11개 대학 중 최하위에 들어가게 됩니다. 입학하던 당시에는 중간이라도 갔는데....

실상 연구조교를 겸하고 있는 행정조교는 월 60만원의 노동력 착취(시급 2,750원)를 당하고 있고 연구조교는 월급이 많이 든다고 뽑지도 않습니다. 그러면서도 이사장과 총장은 대학평가를 위해 교수님들한테 논문을 왜 안내냐고 윽박지르기만 하고 있습니다. 많은 4학년들이 연봉 600이라는 얼토당토않은 말을 듣고 모교를 버리고 다른 곳을 찾아 떠나고 있습니다. 임상과목을 제외한 기초과목만 180여시간이 되는데 기초교수님은 단 8명뿐입니다. 강사의 수를 줄이기 위해 예과의 교양과목을 3학점으로 늘려버려 전공기초과목이 특정 학년이로 몰려버려 이러다가 본과1학년에 성적비관자살시도가 나오는 거 아니냐는 웃지 못할 말들도 흘러나옵니다.

의학대학원의 기본요건을 갖추지 못해 일반대학원으로 등록이 되어 있는 어처구니 없는 사실도 있습니다.

웃기지 않습니까?

학교를 홍보할때는 얼굴마담으로 사용하더니 실제로는 해주는 것 없이 등록금만 올라갑니다. 신입생들은 거의 500만원에 다다릅니다. 그러면서도 우리 동문회에게 손을 벌립니다. 선배님들은 그래도 후배들을 위해서라고 십시일반하여 기부금을 모아 전달합니다.

여기까지가 현상황입니다. 이외에도 이넘의 학교의 눈뜨고 못볼 행태는 넘치고 넘칩니다.

그럼.. 제 자신의 이야기를 해볼까요?

2004년에 4학년이 투쟁에서 열외했을때 모교수님께서 "4학년은 우리 학생이 아니래냐?"라는 말씀이 귓가에 맴돕니다. 어떤 동기들은 '우리도 무언가 해야지 않겠냐'라고도 하고 어떤 동기들은 '그래도 4학년인데...'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잘잘못을 따질 생각은 아닙니다. 그냥 주위 상황이 그러하다는 것입니다.

2004년 당시 비상대책위원장으로 활동하던 기억이 남아있습니다. 그러나 이젠 국가고시가 몇 개월 남지 않은 졸업학년이 되어버렸습니다. 각 동기들의 입장은 잘 이해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내 자신의 문제입니다. 항상 그 당시의 마무리에 대한 아쉬움을 '어쩔 수 없었다'라고 스스로 납득시키려 노력을 해왔던 내 자신의 문제말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또 고민이 시작됩니다. '참모꾼은 되지 말라'고 충고해준 선배의 말때문입니다. 이 고민은 어쩌면 이 투쟁이 끝나기 전까지 풀리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그렇지만 졸업학년이라고 뒷짐만지고 있지는 않을 생각입니다. '선배는 선배다워야 선배다'라고 입버릇처럼 말했으니 그 말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이젠 움직여야 할때인 것 같습니다. 내가 가진 재주라야 페인트를 묻혀가며 플랑을 쓰고, 피켓을 만들고, 전산일을 도와주고, 아직 학교상황에 어두운 저학년 후배들에게 설명해주는 등의 잡일뿐일지라도 보탬이 되고 싶습니다. 그래서 그동안 '어쩔 수 없었다'라고 어거지 썼던 과거를 반성하고 싶습니다.

오늘 간만에 신나 페인트의 냄새와 포스터물감의 냄새를 맡으며 작업하고와서 꽁알거려봅니다. 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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